7.17 오전 7시. 성삼재
지리산은 나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. 새벽 끝 무렵 비가 멎는 듯하더니, 버스를 타고 오른 성삼재는 뿌연 구름 속에서 여전히 제법 굵은 비를 뿌리고 있다. 아직 나를 깨끗이 비우지 못했나 보다.
성삼재에 도착하자마자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버스에 올라 타 입산이 통제됐으니 타고 온 버스를 타고 내려가든지, 여기서 기다리던지 선택하란다. 오늘 내로 산에 오를 수 없으니 그냥 내려가는 게 좋을 거라는 투다.
타고 온 버스 비가 아까워 성삼재 휴게소에 내려서 기다리고 있으니, 등산객들이 하나 둘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른다. 올라가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노고단 산장까지는 상관없을 거란다.
자갈밭으로 포장된 산길을 오른 지 15분 쯤 됐을까. 얼마 전 버스에 올라탔던 무뚝뚝한 관리 공단 직원이 자를 몰고 와 험상궂은 표정으로 얼른 내려가라고 윽박지른다. 우리는 못 이긴 채 그러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. 공단 직원은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을 찾기 위해 차를 몰고 자갈길을 올라갔다.
하지만 올라 온 길이 너무 아쉬웠다. 이대로 내려가면 지리산 산행을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. 오랜만에 떠난 여행을 이런 식으로 끝내기는 싫었다.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며 걷다 보니 작은 개울을 따라 샛길이 보였다. 우리는 샛길로 들어가 나무 너머로 숨었다.
우거진 숲 속에 매복해 있는 모습이 우스웠다. 우리는 한국 전쟁 때 빨치산이라도 된 양 숨을 죽이고 공단 직원이 차를 몰고 내려가기만을 기다렸다. 10여분 뒤에 공단 직원이 탄 트럭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자갈길을 내달리는 모습이 보였다. 우리는 작전이 성공했다는 듯 서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샛길을 빠져나왔다.
다시 공단 직원에게 잡힐 새라 1시간 거리를 40분 만에 걸어 노고단에 도착했다. 노고단도 역시 구름에 갇힌 채 고요했다. 인적도 드물었다. 노고단에서 지리산 능선으로 향하는 길만 입산통제 입간판이 묵직하게 막아서 있었다. 우리는 더 이상 산행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 노고단 산장에 여장을 풀고 입산 통제가 풀리기만을 기다렸다.
(성삼재를 지켰던 관리공단 직원 분! 꼭 지리산에 올라야 하는 마음에 속이고 말았습니다. 죄송합니다. 꾸벅)
2010/07/27 - [여행] - 여름 장마 속 지리산을 가다(1) : 구례 버스 터미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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